'97년생과 97년생 딸을 둔 엄마의 세월호 이야기' - 스브스뉴스

2018. 4. 17. 00:00콘텐츠/Youtube


2018. 4.16 

세월호 4주기 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슬프고 안타까운 사건인 만큼

다양한 콘텐츠도 쏟아져 나옵니다.


오늘은 평소 자주 모니터링하는 스브스뉴스의 4주기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링크에 달아놓은 영상외에도 4개의 시리즈 영상이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콘텐츠는 특별히 참신한 기획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리액션 비디오는 이미 예전부터 많이 써먹어왔던 포맷이니까요.


하지만 그 사연의 무게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라면, 굳이 참신하지 않아도 가치있고 깊이있는 콘텐츠가 됩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참신하지 않더라도 시청자의 눈물을 자아낼 수 있는 감동적인 영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브스뉴스의 4주기 콘텐츠는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편집측면에서 조금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97년생과 97년생 딸을 둔 엄마의 세월호 이야기'의 영상을 보며

저는 어떤 내용의 영상인지 감을 잡기 힘들었습니다.


영상의 초반부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셔서, 저희가 전해드렸어요" 


라는 내레이션이 나오고 출연자는 유가족의 영상이 담긴 핸드폰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핸드폰이 유가족의 영상이 담긴 핸드폰이다' 라고 단서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바로 출연진의 인터뷰로 넘어갑니다.  


'출연진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유가족의 영상 편지를 출연진이 보게 되는 거구나!' 


를 이해한 것은 세월호 유가족 분들이 나오는 부분이 돼서야 였습니다.

영상 초반부에 영상 구성에 대해서 좀 더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면,

영상을 이해하기 더 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이고.

여전히 이 영상은 충분히 가치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울었고 댓글창에 댓글을 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니까요.

특히 아무 죄 없이 정부의 핍박과 냉담한 대중의 돌팔매를 감내해야 했던 유가족들에게 

조금의 위로라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위의 영상이 많이 와 닿았습니다. 

저 역시 PD를 지망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언론인'과 '언론인 지망생'들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에 대해서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언론인의 책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조금 더 개인적인 사담을 말하자면

저에게 세월호 참사는 '슬픔'보다는 '부끄러움'입니다.


2014년 4월 16일. 


대학교 3학년 1학기를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첫 보도를 들었을 때는 이른 오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했다고요.

저는 그때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해경이 알아서 다 구해주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 후 전원구조라는 보도가 이어졌고요.


'다행이네. 사건사고는 일상다반사니까'


라는 생각을 하고 수업을 듣는데, 후속보도가 뭔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전원구조는 오보였고, 오히려 구조작업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저는 그 순간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사활을 걸고 구조해야 할 판국인데, '전원구조'라는 말도 안되는 오보를 낼 수 있다니.

그러나, 그 후로 분노하기 보다는 사건을 외면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해야할 것들이 많아'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정치에 대해서 떠드는 건 시정잡배들의 일이야'

'더 지식을 쌓고, 더 통찰을 쌓은 다음에 입을 열면 돼'

'아직 나는 떠들만한 껀덕지가 안돼'

'굳이 튀어서 뭐할거야. 스펙이나 쌓아.'


라는 생각으로 세월호를 경원시 했던 것이 2014년 봄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그 후로 몇 년간 부끄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인양은 커녕, 제대로 된 수사도 이뤄지지 않는 것이 의문이었지만

그럼에도 입을 닫고 귀를 막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몇년을 살다 보니, 세월호에 공감하면서도 목소리 내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지나온 삶이 부끄러워 노란리본을 달지 않았고 

세월호 이야기에 끼는 것 조차 불편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저 자신에게 당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부끄럽고 싶진 않습니다. 

앞으로는 작게나마 부조리함에 대해 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고

그 목소리를 위해 저 자신의 안정을 포기할 용기를 내려 합니다.



미디어에 일하는 사람이라면 부끄럽더라도 목소리를 내는 것이 미덕이니까요.




어쩌다 보니 글이 너무 진지해졌습니다. 

저 진지한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하지만 그래도 제 생각은 어느정도 정리를 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정리해 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