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2018. 5. 4. 21:56공부/개인단상

 몇 주 전인가, 출근하기 전에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좋은 사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쓸까. 종각역 술집에서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하고 나오는 친한 친구, 아니 취한 친구들의 "너 너 임마! 넌 진짜 좋은 사람이야". 연애에 서투른 복학생이 청춘사업을 위해 수작부릴때면 듣는 "ㅇㅇ는 참 좋은 사람이야". 착하지만 제 몫 못하는 조별과제 조원을 신나게 뒷땅까고 수습하며 덧붙이는 "그래도 ㅇㅇ가 사람은 참 좋아" 까지. 좋은 사람의 용법은 너무나 많다. 좋은 사람이란 대체 뭘까.


 좋은 사람의 용법이 너무 많으니까 '고도리'라는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고도리 어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당신은 고민한다. 고도리는 어떤 사람일까. 당신은 딱히 떨어지는 답을 찾지 못하고 대답한다. "고도리는 좋은 사람이야". 고도리는 좋은 사람이다. 좋은 친구다. 그 외에 더 붙일 말은 없다. 이럴 때의 '좋은 사람'은 무엇일까.


 좋은 사람이란 단어를 파헤쳐 보면 밝은 의미와 어두운 의미가 있다. 밝은 의미의 '좋은 사람'은 말 그대로 좋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 배려하고 무던한 사람. 함께 있으면 불편할 것 없는 사람이다. 어느 집단에 가거나 이런 좋은 사람들은 꼭 한두명씩 있다. 동아리에 신입이 들어오면 유난히 부산 떨면서 후배님 여기 앉으세요. 아하하하 후배님 진짜 재밌어요. 담에 꼭 밥먹어요. 하다가 몇 달 후에는, 어휴 후배가 제일 무서워. 내가 선배라고 니들보다 잘 마시는 건 아니라고. 나 좀 살려줘. 하는 그런 사람들. 조금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들이다.


 어두운 의미의 '좋은 사람'은 특징 없는 사람이다. 밝은 의미의 좋은 사람을 자세히 보라. 그들은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죽이면서 다른 사람들이 떠들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 개그맨들의 은어를 사용하자면 '니주', '니마이'다. (개그맨들끼리 코미디의 웃음 포인트를 '오도시'라고 하는데, 오도시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니주'라 하고 '니주'를 쌓는 역할을 하는 배우를 '니마이'라 한다.) '좋은 사람'은 특징이 없으니 파격이 없다. 파격이 없으니 돋보이지 않는다. '좋은 사람'은 독사과같은 화려한 매력도 없고 자기만의 색깔이 없다. 좋은 사람은 무채색이다. 하얀색, 검은색, 또는 회색이다. 


 '좋은 사람'들은 선을 긋는다. 그들은 자신의 무채색이 오염되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들과 함께할 때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죽이는 이유다. 그들은 밑그림으로 남아있고자 한다. 고개 숙인 자신의 머리 위로 다른 사람들이 채색 하는것. 그 정도로 만족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은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 한다. 밑그림이 자기 주장을 하면 데생이 되는 것 처럼 좋은 사람이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리면 더 이상 '좋은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그들은 튀지 않고 중간만 가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끝까지 무채색, 밑그림, 빛과 소금으로 남는다.


 '좋은 사람'은 바로 나의 모습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툭하면 시비를 걸어 싸우다가 혼자 울먹이던 모난 성격의 울보였다. 점심시간에 축구나 농구를 하기 보단 혼자서 책을 읽거나 만화를 그리던 나는 인기많은 친구들이 유난히 부러웠다. 흔히 말하는 '성격 좋고 인기 많은 반장'이 되고 싶었다. 관심없던 축구와 농구를 했고, 나의 성질을 건드리는 친구들의 농담에 웃는 연습을 했다. 몇 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좋은 사람'을 연출하는데 성공했다. 


 '좋은 사람'이 되자 인생이 편해졌다. 친구들이 생겨서 고등학교 때는 회장을 했고, 대학 새내기 때는 학번장을, 복학 후에는 동아리 기장을 했고 2년 간의 창업 휴학 동안에는 공동 창업자로 창업 지원 서류에 이름을 올렸다.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친구들을 얻고, 멋진 스펙을 얻었다. 그러나 강한 힘에 책임이 따르듯 '좋은 사람'에도 대가가 따른다. 모났지만 잠재력이 있었던 나 자신의 색깔과 고집을 잃어버렸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얻는 대신 책과 만화 그리기를 버렸다. 나의 색깔에게 자라날 기회를 주지 않고 마음 속 감옥에 가둬버렸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나는 오랫동안 가둬놓았던 어린 시절의 모났던 나를 다시 불러들이기로 했다. 모났던 나 자신이 그 때 어떤 생각과 상상을 했는지 회상하기로 했다. '좋은 사람'을 넘어서 '나 자신'이 되는 것이 후회 없는 선택이라 믿는다. 타인의 기대와 인정을 구걸하지 않고, 나 자신을 찾아나가는 여행을 할 때 비로소 군더더기 없이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화난 어린시절의 나 자신을 포용할 때 '좋은 사람'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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